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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기계에 졌다고? 실리콘밸리의 생각은…

[2016 키플랫폼: 4차산업혁명 대응전략]②<인터뷰>멜로니 와이즈 '페치 로보틱스' CEO

산호세(미국)=배영윤 | 2016.03.1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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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치 로보틱스'의 물류 창고용 로봇 '페치(Fetch, 왼쪽)와 프레이트(Freight, 오른쪽 두 개)'. 페치는 레이저로 물건을 인식하는 센서가 장착된 머리와 6kg까지 물건을 들 수 있는 팔 한 개로 구성됐다. 프레이트는 최고 70kg까지의 물건을 싣고 이동할 수 있다./사진=페치 로보틱스(Fetch Robotics) 홈페이지
"인간이 인공지능을 한 번이라도 이기면 대성공이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두 번째 대국을 중계하던 김성룡 9단의 말이다. 5개월 전 프로 2단 수준에 불과했던 알파고는 세계 바둑 1인자를 상대로 연거푸 불계승을 거둘 정도로 일취월장했다. 사람이라면 최소 10년 이상 걸렸을 '성장'을 알파고는 단 5개월만에 해냈다. 그뿐만 아니라 첫 대결을 통해 이세돌 9단의 수까지 '러닝(learning)'한 뒤 바로 다음 날 실전에 적용했다.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의 위력을 실감하는 동시에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까지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과 함께하는 사회는 정말 공포일까. 세계적인 혁신기업들이 밀집한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로봇 회사 '페치 로보틱스(Fetch Robotics)'의 CEO(최고경영자) 멜로니 와이즈(Melonee Wise)의 생각은 달랐다.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를 로봇이 대신하고 인간은 좀 더 가치가 높은 일에 투자해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페치 로보틱스는 지난 2014년 설립된 직원 30명 규모의 물류 자동화 로봇 회사다. 모바일로 조종가능한 운반 로봇 '프레이트(Freight)'와 피킹(picking) 로봇 '페치(Fetch)', 그리고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물류 산업의 혁신적인 자동화 솔루션을 내놨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고객이 주문한 물품 정보를 입력하면 '듀오 로봇(페치&프레이트)'이 물류 창고에서 해당 물건을 바구니에 넣어 포장대까지 가져온다. 충전도 알아서 하니 24시간 근무도 가능하다. 로봇의 가격은 한 대당 2만5000달러. 장기적으로 보면 인건비는 줄고 업무량은 더 늘릴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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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치 로보틱스 CEO 멜로니 와이즈. 그는 단순한 업무는 로봇이 대체하고 인간은 고도의 숙련된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동력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사진=김평화 기자
기계공학 박사 출신 기업가 멜로니 와이즈 CEO는 15년간 로봇 개발에 몰두해온 '로봇통'이다. 지난해 'MIT Technology Review'가 선정한 'Annual INNOVATORS UNDER 35'에도 선정됐다. 창업한 지 1년도 채 안돼 소프트뱅크(Soft Bank)와 샤스타 벤처(Shasta Ventures) 등으로부터 2300만달러의 투자금도 따냈다. 지난달엔 미국 로봇 매체 'Robotics Business Review'가 선정한 2016년 주목해야할 TOP50 기업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 1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페치 로보틱스 본사에서 만난 멜로니 와이즈 CEO는 "과거부터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일자리 대체(Job replacement)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경제 성장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에게서 로봇을 통한 산업 구조의 혁신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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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 산호세의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페치 로보틱스' 본사 전경/사진=배영윤 기자
-창업 스토리가 궁금하다.
▶나는 로봇 인큐베이터라 불리는 '윌로우 개러지(Willow Garage)'의 초창기 멤버다. 거기서 5년간 일하며 ROS(Robot Operating System, 로봇 운영 체계)와 많은 로봇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윌로우 개러지의 스핀오프 회사인 '언바운디드 로보틱스(Unbounded Robotics)'의 공동 창립자로 'UBR-1 로봇'을 개발했다. 모회사인 윌로우 개러지가 재정 문제로 2014년 문을 닫았다. 자연스럽게 언바운디드 로보틱스도 사업을 접었다. 그해 8월 언바운디드 로보틱스의 핵심 멤버들과 함께 '페치 로보틱스'를 세웠다. 처음 9개월은 CEO와 엔지니어링 업무를 모두 소화했는데 최근엔 CEO 업무만 하고 있다.

-물류 산업에 특화된 로봇을 개발한 이유가 궁금하다.
▶실리콘밸리 뿐만 아니라 로봇 산업 전반에 걸쳐 '윌로우 개러지'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윌로우 개러지 출신들이 로봇 업계에 많이 포진돼 있다. 호텔 서비스 로봇을 개발한 사비오크(Savioke)도 있고 슈퍼마켓에 활용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한 업체도 있다. 그들은 다양한 산업군에서 활용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했고 지금도 개발 중이다. 전자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물류 환경도 변했다. 5년 전에는 이틀, 2년 전엔 하루면 주문한 물건을 받아볼 수 있었다. 이제는 주문 후 2시간이면 배송된다. 물류 시스템 매트릭스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물류 센터 내에서 운반을 위해 직원이 걷는 거리는 하루에 약 12~15 마일(약 20~25km) 정도다. 많은 운송 수단도 필요하고 이 구간에는 이동과 안전을 위한 불빛도 설치돼야 한다.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나는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방대한 업무를 처리할 노동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자동화 기술의 개발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이런 측면에서 비용은 낮추고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로봇을 고안했다.

-과거에도 자동화 시스템은 있지 않았나.
▶전통적인 자동화 기술의 문제점은 현장에 시스템을 적용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고 유연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작업 환경이 바뀌면 그에 맞는 시스템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그게 어려웠다. 하지만 로봇은 굉장히 유연한 시스템이다. 작업 환경이 바뀌어도 바로 적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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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자사 로봇 '페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멜로니 와이즈 CEO. (오른쪽)회사 내에 마련된 모의 물류 창고에서 직원이 '프레이트'의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다./사진=김평화 기자
-페치 로보틱스만의 경쟁력은?
▶직원들 모두 로봇 산업에 대한 백그라운드가 깊다. 또한 대부분의 직원이 로봇 산업에서의 10년 이상 경험을 갖췄다. 나는 로봇 산업의 핵심 기술인 ROS 개발에 참여했다. ROS는 거의 모든 로봇 기술에 활용되는 기술이다.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팀을 구성한 것도 차별점이다. 하드웨어 중심의 회사보다 기술적 측면에서 더 정교하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의 소프트웨어는 더 넓은 공간을 컨트롤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확실한 우위에 있다고 자부한다.

-페치 로보틱스의 시스템이 다른 곳에도 활용될 수 있나?
▶공항에서 짐을 운반하거나 레스토랑에서 그릇을 치우는 로봇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로봇 컨베이어 시스템 개발 의뢰도 들어온 적도 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넓은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물류 산업 내에서 물건을 운반하는 기능을 향상 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중국에 관심을 갖는데 중국 진출 계획이 있나.
▶지금은 미국 시장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 다음은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이다. 중국 진출은 망설여진다. 넘어야할 규제도 많고 IP문제도 있다. 그리고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면 중국에서 모든 테스트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것 역시 우리에겐 도전이다. 이전에 새로운 시도를 했다가 묻힌 로봇들이 많은데 그런 전철을 밟고 싶지 않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진출 전략은 무엇인가.
▶우선 일본에 유통 채널을 확보한 상태다. 현재 우리 모델을 판매할 수 있도록 꽤 많은 단계가 진행됐다. 그 유통 채널을 통해 우리 사업을 현지화할 수 있게 됐다. 로컬 파트너가 중요한 이유다. 미국과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현지 협업 채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그들(일본쪽 유통 채널)이 싱가포르, 타이완, 호주 진출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도 고려중이긴 한데 아직 계획된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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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치 로보틱스' 본사 내부. 이곳에는 다양한 인종의 숙련된 엔지니어들이 근무하고 있다. 멜로니 와이즈 CEO는 직원들이 창의적인 업무를 할 수 있는 공간과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사진=김평화 기자
-로봇 산업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
▶비단 로봇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기술 발전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Job replacement)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이후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 생각한다. 과거를 보라.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이 출현할 때마다 항상 '일자리 대체' 문제는 있었다. 지금 전화 교환원이란 직업이 사라지지 않았나. 로봇이 단순한 일을 대신하면 인간은 그보다 높은 수준의 업무를 새롭게 숙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술의 발전이 '숙련된 인간'을 만든다는 얘기인가.
▶기술 발전의 장점은 항상 경제 성장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고도로 숙련된 인력을 더 많이 필요하다. 이것은 현재 미국 사회에서도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다. 우리에게도 현장에 배치하는 로봇과 소프트웨어를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분야에 지식과 경험이 많은 숙련자여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사람들간의)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컴퓨터와 관련된 고도의 숙련자들을 양성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분야에 일자리는 많다. 하지만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숙련자들을 찾는 것은 어렵다. 기술의 발전을 통해 얻은 이익을 숙련된 노동력 창출을 위한 재교육 비용으로 투자하는 인력의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페치 로보틱스의 목표를 말해달라.
▶우선 현재는 두 가지(프레이트&페치) 로봇 개발에만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향후 5년 내에 새로운 유형의 로봇을 추가로 개발할 예정이다. 최근 COO(최고 운영 책임자)도 새로 영입했고 올해 안에 직원을 20~30명 더 채용해 회사 규모도 키울 계획이다. 장기적인 비전이자 가장 큰 목표는 진짜 사람처럼 일하는 로봇을 다량으로 만들어내는 것. 현재 우리는 고객들과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시범 단계를 거치는 중이다. 앞으로 다양한 서비스 분야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진짜 일(real work)'을 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고 싶다.


Fetch & Freight from Fetch Robotics on Vim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