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실업률 40%, 국가부도 스웨덴…정치가 살렸다

[2017 키플랫폼: 리마스터링 코리아]특별대담, 스웨덴과 일본에서 본 대한민국

정진우 조철희 김상희 | 2017.03.27 05:10

편집자주 |  '팬더모니엄'(대혼란, Pandemonium). 대한민국의 2017년 오늘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입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으로 대한민국은 그동안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가 지금 살얼음판을 걷고 있습니다. 머니투데이 글로벌 컨퍼런스 키플랫폼(K.E.Y. PLATFORM)은 이런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는 비법을 오는 4월27~2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에 앞서 지난 6개월동안 키플랫폼과 함께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과 전략을 고민했던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앞으로 한달 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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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統合)


둘 이상의 조직이나 기구를 하나로 합친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에서 ‘통합’만큼 이상적인 단어가 있을까. 분열과 갈등이 일상화한 이 나라에서 통합은 항상 구호에 그치는 탓이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민주주의 사회에선 통합이 어울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2017년 지금, 여러 대통령 후보를 비롯해 많은 정치인이 “통합!”을 외친다. 우리 사회 최우선 과제로 ‘통합’을 내세우는 전문가도 많다. 그만큼 반드시 필요한 가치로 읽힌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으로 국가적 위기 상황에 놓인 대한민국이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려면 통합의 마술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좁은 땅덩어리의 나라가 남과 북 둘로 나뉜 것도 모자라 좌와 우, 위와 아래 등 사분오열됐다. 여기에 나라 밖은 스트롱맨들의 세력대결로 혼란 그 자체다. 대한민국 안팎이 모두 혼란스럽다.

이런 어지러운 상황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 안에서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만 한다. 머니투데이 글로벌 컨퍼런스 키플랫폼(K.E.Y. PLATFORM)이 이런 혼란을 극복할 해결책 가운데 하나인 통합의 해법을 찾기 위해 우리가 배워야 할 나라로 손꼽히는 스웨덴과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본의 현지 전문가를 직접 만났다.

키플랫폼은 지난 24일 머니투데이 본사 4층 회의실에서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장 사회로 장상수 일본 아시아대학교 도시창조학부 교수와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의 대담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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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플랫폼 대담 참석자들.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장(사회, 가운데) 장상수 일본 아시아대학교 교수(오른쪽),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교수. /사진= 임성균 기자

- 방하남 원장(이하 방 원장): 우리나라는 20여년 격차를 두고 일본을 뒤좇아가고 있다. 일본이 겪은 20년의 암흑기에 들어가느냐가 우리 사회의 두려움으로 자리잡고 있다. 반면 스웨덴은 최고 복지국가로 여전히 잘 살고 있는 나라로 보인다.

▶ 장상수 교수(이하 장 교수): 일본은 사실 '잃어버린' 나라가 아니다. 모든 게 '정체된' 나라다. 20년 넘게 GDP가 500조엔대에 멈춰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2020년까지 600조엔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아베노믹스로 달성할 수 있을지 논란이 많다. 한국이 일본처럼 저성장 늪에 빠질 것 같아 걱정된다.

▶ 최연혁 교수(이하 최 교수): 스웨덴은 살기 좋은 나라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 북아프리카와 이라크 등에서 정치 망명객 등 이민문제가 심각하다. 인구가 1000만명인 나라에 해마다 수십만명이 들어온다. 이들에 대한 재교육 등에 10년간 막대한 재정이 들어간다. 이에 반대하는 극우주의가 성행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 방 원장: 많은 전문가가 일본은 ‘반면교사’, 스웨덴은 ‘롤모델’이라고 입을 모은다. 왜 그럴까.

▶ 장 교수: 일본은 아베가 재집권(2012년)하기 전에 정치가 극도로 불안정했다. 10여년동안 1년에 한번씩 총리가 계속 바뀌었다.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각종 정책은 효과가 없었고, 나라 경제는 그대로 멈춰버린 것이다. 정치불안과 경제침체, 대한민국이 반드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 최 교수: 스웨덴은 안보나 경제 등 각종 위가가 닥치면 정치적으로 여야 협의체가 곧바로 가동된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대한민국 현실을 감안하면 절대 상상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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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플랫폼 대담을 진행하는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장(사회)/사진= 임성균 기자

- 방 원장: 대한민국은 지금 대통령 파면으로 국가적 위기 상황이다. 최 교수 말대로 스웨덴은 합의의 정치가 유명한 나라다. 정치가 위기극복에 나서고, 국민들은 그런 정치를 신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정치적 안정이 선진국의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 최 교수: 스웨덴도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갈등이 심했다. 1931년 한국에서 '춘투'라고 부르는 전국 총파업이 있었다. 군인들의 발포로 5명이 사망했다. 세계 노동운동사에 유례가 없었던 일이다. 노사간 대립이 심했다. 그때 정치권이 움직였다. 1932년 집권한 좌파 사민당(사회민주당)이 혼자 힘으로 안되니까 우파 농민당(농업민주당)에 협조를 요청했다. 당시 실업률이 40%까지 올랐고 전세계가 대공황에 빠진 때였다. 농산물 정책을 놓고 서로 딜을 했다. 특별법을 만들어 기업은 해고를 못하게 하고, 노동계는 파업을 금지토록 했다. 노사는 2년간 장기 전략회의에 들어갔다. 긴 합의의 시간 끝에 1938년 12월24일 ‘살트셰바덴협약’에 사인했다. 역사적인 사회적 약속인데 이 협약은 스웨덴 협치의 상징이다.

- 방 원장: 한국도 '사회적 합의' 혁명이 필요하다. 노사 당사자들이 생존을 위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협의가 안되면 정부가 중재를 하면 된다. 노사 합의정신에 따라 정부가 지원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 일본은 어떤가.

▶ 장 교수: 일본 사회도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정신이 있다. 일본은 1974년 오일쇼크 때 큰 경험을 했다. 사회에 혼란이 왔다. 그때 국민들이 쇠락해 가는 나라의 모습을 보고 "이래선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자민당이 장기 집권하며 주도적으로 경제를 이끌었다. 일본 정노사 위원회가 있는데 경기가 좋지 않을 땐 파업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 이후 노조는 싸워서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하면 파업을 안한다. 사측도 노조의 얘기를 최대한 들어준다. 지금까지 그 정신이 이어진다. 최근 전자업체 노조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노조에서 먼저 성과급 제도 개편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일본 전자업체들이 삼성에 초토화당한 상황인데 어떻게 성과급만 요구할 수 있냐고 했다더라.

- 방 원장: 제도와 시스템이 갖춰진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런 게 잘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사회적 합의나 국민적 컨센서스다.

▶ 최 교수: 스웨덴은 1980년대말 주택가격 버블로 재정위기에 빠졌다. 그때 여야가 한 테이블에 앉았다. 1991년에 국가부도사태가 났다. 바로 여야 영수회담이 열렸다. 사민당을 비롯한 야당 6개당 등 모두 7개 정당 당수가 앉아서 바로 국가위기회의를 시작했다. 야당들이 ‘노'(No)하면 그만인데 여당에서 도와달라고 하니까 바로 달려가 경제위기 해법을 도와줬다. 총리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했다. 이 메시지 하나가 시장을 안정시켰다. 1993년에 사민당이 여당으로 복귀했을 때도 똑같이 야당이 타협해줬다. 복지재정을 그때 30% 줄였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게 핵심인데, 야당이 국민을 설득해 민중 봉기를 막았다. 노사도 위기에 함께 대처하기 위한 노사협의작동체제를 유지했다. 스웨덴은 국민 동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정치의 갈등 해소 기능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 장 교수: 일본에도 배울점이 있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났을 때 국민들이 차분하게 위기에 대처했다. 일본 국민은 어렸을 때부터 화합하는 정신을 배운다. 오래된 전통이다. 국익을 위해 서로 돕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컨센서스가 있다. 정치인들도 국가적 위기땐 사욕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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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플랫폼 대담에 참석한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교수/사진= 임성균 기자

- 방 원장: 정치 지도자는 안정된 리더십을 바탕으로 비전과 일관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양보와 타협의 정치를 하면 안정된 리더십이 나올 것이다. 대한민국의 차기 정부가 가장 신경써야 할 부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최 교수: 사민당이 2014년에 집권했는데 당시 첫 메시지가 "고용이 없으면 분배도 없다. 고용이 최고의 복지"였다. 우파의 논리를 좌파인 사민당이 들고 나왔다. 사민당도 결국 일자리를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잡았다. 사민당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를 무조건 도와주는 정책을 하지 않는다. 스웨덴도 초고령사회로 들어섰다. 이제 15~75세를 생산가능 인력으로 보기 시작했다. 10~20년 이후 노동시장에 대비한다. 75세까지 노동한다는 전제하에 ‘일생 3가지 직업’을 목표로 거기에 맞춰 교육시스템도 손보고 있다. 현재 57세까지 나오는 교육지원금을 67세까지 늘릴 계획이다. 청년기에 직업을 한번 갖고, 40대 정도에 직업을 한번 바꾸고, 말년에 한번 더 바꾸는 등 인생 삼모작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꼽히는 스웨덴도 일자리를 최우선 정책으로 삼았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당연히 일자리다.

▶ 장 교수: 일본은 인구구조의 변화 영향도 있지만 공교롭게 아베노믹스 이후 78개월 연속 완전실업자 수가 계속 줄고 있다. 고용자수는 48개월동안 계속 늘었다. 앞으로 언제까지 일자리가 계속 늘 것인가가 관심사다. 문제는 2060년엔 국민의 약 40%가 노인일 것이란 점이다. 사회보장비 부담이 매우 클 것이다. 일본 정부는 기존 산업을 고부가가치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베정권은 앞으로 일본이 먹고살 길이 4차 산업혁명을 비롯해 이 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게 리더십이다. 중국도 신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 선전에 가봐라. 돈이 넘쳐나고 일자리가 쏟아진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대한민국은 너무 자만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 방 원장: 차기 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국가를 제대로 이끌어야 할 리더가 리더십을 발휘해 정책 추진에 나서야 한다. 저성장시대에 우리나라의 생존이 달렸다.

▶ 최 교수: 차기 정부에선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포퓰리즘을 포기해라. 할 수 있는 것만 약속하고, 없는 것은 장기적으로 우리당이 한 번 더 집권하면 하겠다고 호소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스웨덴에선 국세청이 지난 25년 동안 신뢰도 1위를 차지했다. 스웨덴 국민들은 국세청을 믿는다. 세금을 걷어가는 데 대해 동의한다. 세금을 낸 만큼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세금의 투명성이 없는 상태에선 복지재정을 놓고 여야, 노사가 싸울 수밖에 없다.

▶ 장 교수: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인 노동개혁에 시동이 걸렸다. 법을 고쳐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다른 2개의 화살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아베정부는 여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자고 해서 위원회도 만들었다. 일본은 국가 비전이 만들어지면 담당 장관이 임명된다. 조직을 새롭게 만드는 게 아니고, 장관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가 꾸려지고 각 부처에서 협력한다. 장관 명령이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한국정부도 그런 조직을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 국가 지도자는 리더십을 바탕으로 정부를 운영하면서 국민과 기업에 서비스해야 한다. 정부가 권력을 행사하고 예산을 제대로 안 쓰고 엉뚱한 곳에 쓰니까 비리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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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플랫폼 대담에 참석한 장상수 일본 아시아대학교 교수/사진= 임성균 기자

- 방 원장: 앞으로 어떤 정부가 들어서건 위기의 상시화에 놓일 것이다. 법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그 위기를 관리하고 극복해 나가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사회 구성원들과 협의를 통해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이끌어내는 게 리더십이다. 상시화된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관리함으로써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 최 교수: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모든 역사 속에서 위기가 없는 나라는 없었다. 슬기롭게 헤처나가는 것은 정치인의 정치력이다. 정치가 힘을 갖고 합의할 수 있고 우리가 보여줄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도 이런 리더가 필요하다. 모든 것의 시작이 협의와 합의다. 10~20년 후 미래를 본다면 사회적 통합과 민주적 가치 위에 서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 위기는 우리 공동의 책임이다. 남 탓만 하면 안된다. 반성이 필요하다. 공동의 책임의식 속에서 화합이 필요하다.

▶ 장 교수: 대다수 국민이 공유하는 비전과 공감이 있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차기 정부가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로 만들겠다고 비전을 제대로 제시한다면 국민과 기업 등 모두 각자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공유된 목표가 없다 보니 각자 원하는 것만 주장한다. 그래서 방향이 없고 갈등만 있는 것이다. 국가 비전을 제대로 세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가의 생존이 달린 문제엔 여야가 없고, 진보와 보수가 없다.

☞ 대담자 주요 이력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장=△전남 완도 출생 △서울고등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 학사 △밴더빌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석사 △위스콘신대학교 메디슨캠퍼스 대학원 사회학 박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조정실장 △한국사회보장학회장 △한국연금학회장 △고용노동부 장관

◆장상수 일본 아시아대학교 도시창조학부 교수=△경북 상주 출생 △상주고등학교 △건국대학교 교육학 학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일본 게이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일본 게이오대학교 대학원 상학 박사 △한국산업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일본총합연구소 전문연구위원 △삼성경제연구소 인사조직실장(전무)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충북 충주 출생 △충주고등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스웨덴학 학사 △한국외국어대학 정치학 석사 △스웨덴 고텐버그대학 정치학 박사 △스웨덴 쇠데르턴대학 정치학과 교수 △런던정경대 정치학과 객원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학 정치학과 객원교수 △스톡홀름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