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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플랫폼 뉴스레터]獨스테들러, 모바일 시대서도 꿋꿋

조철희 | 2014.07.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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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처음으로 색연필과 OHP펜을 만든 오래된 연필 회사가 있다. 독일 뉘렌베르크의 스테들러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모바일 시대, 사람들 손에서 연필과 볼펜이 떠난 지 이미 오래인 상황에서 아직까지 이 회사가 연명하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스테들러는 모바일 같은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더불어 사양 산업이 될 수밖에 없는 소비재 기업이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적인 브랜드로 많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전 세계에 걸쳐 150개국에 판매망을 갖추고, 생산 제품의 80%를 수출하고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스테들러 제품은 인기가 가장 높고 평가도 대부분 별 다섯 개 만점이다.

연필, 색연필, 샤프, 볼펜 같은 기본 제품도 여전히 인기이지만 업종 자체가 사양길에 접어든 시장 환경에서 스테들러가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제품과 시장을 창조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뉘렌베르크 현지에서 가진 악셀 마르크스 매니징디렉터(managing director) 와의 인터뷰 등을 토대로 스테들러의 혁신 히스토리를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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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넘는 융합 혁신의 역사

스테들러는 최근 어린이 교육용으로 페인트북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어린이들이 스케치북이 아닌 스마트 패드에 색칠을 하며 그림 공부를 할 수 있게 한 것. 애플리케이션만 개발했다면 한계가 있었겠지만 스테들러는 애플리케이션에 사용할 펜도 함께 만들었다.

일반 태블릿용 펜과 같은 플라스틱 대신 나무가 펜을 감쌌다. 컴퓨터용 펜인 스타일러스와 나무펜을 합한 것으로 특허까지 받았다. 본능적으로 우리 손에 편안함을 주는 나무펜의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애플리케이션이라는 현대적 기구까지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스마트 기기의 편리함과 연필의 감성이 융합된 것으로 그림 그리는 아이들의 즐거움도 커졌다. 애플리케이션과 함께 팔리는 이 펜은 최근 스테들러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바로 융합적 혁신의 성과다.

또 스테들러의 펜 중에는 일반적인 육각형이 아닌 특유의 삼각형 디자인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있다. 인체공학과 미학을 융합한 혁신이다. 스테들러는 사람들이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펜을 쓸 수 있도록 혁신을 멈추지 않는다.

스테들러의 융합 혁신의 역사는 300년 넘게 거슬러 올라간다. 1660년 독일 뉘렌베르크의 목공조합은 사각의 흑연을 나무로 감싼 연필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람의 손으로 나무를 가공하는 것과 심을 가공하는 것을 철저히 나눈 분업 시스템이었다.

연필을 만들기 위해서는 목수가 꼭 필요했지만 이 조합의 기술자인 프레드리히 스테들러는 역발상을 한다. 조합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조합을 나와 나무 가공과 심 가공을 동시에 일괄적으로 하는 생산 시스템을 구축한다. 그것도 집 안에서 가내수공업 형태로 만들기 시작했다. 공업의 형태로, 풀 프로세스로 연필을 만든 것은 스테들러가 최초다. 그 당시에는 혁신적인 융합의 산물이었다.

그의 후손인 요한 세바스찬 스테들러는 1834년 색연필을 발명하고, 1835년 뉘렌베르크에 정식으로 공장과 회사를 섭립했다. 1900년과 1901년 각각 마스(Mars)와 노리스(Noris)가 영국 황실 특허국에 등록되고, 지금까지 스테들러의 세계적인 브랜드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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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극복하는 방법, 적응과 변화

스테들러는 1945년을 전후로 전쟁에 의해 공장의 20%가 파괴됐다. 이후에는 급격한 기술 발전에 변화와 위기를 맞았다. 이때는 기술 혁신 역량으로 변화에 앞서 가는 빠른 적응력이 스테들러를 지켰다.

세계 최초로 1954년에 첫 생산이 시작된 OHP 필름용 펜 루모컬러는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이 됐고,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스테들러로서는 또 한번의 전환점이 됐다.

1970~80년대에는 마스 브랜드의 제도용 제품의 유명세를 얻었다. 당시 가장 강력한 경쟁사 중 하나인 로트링과 시장을 양분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오면서 컴퓨터 제도기인 CAD의 눈부신 발전 앞에 손 제도 제품들은 교육용으로 소량만 팔리게 됐다. 그러자 스테들러는 로트링과 함께 수익 악화를 겪었다.

그러나 두 회사의 운명은 달랐다. 로트링은 제도 용품에만 의지해온 터라 더 큰 타격을 입었고, 결국 회사가 팔렸다. 반면 스테들러는 미술용품, 필기용품으로 포트폴리오를 분산한 덕분에 타격을 피할 수 있었다.

1990년대는 잉크펜, 형광펜의 시대였다. 스테들러는 당시 뚜껑을 열고 오래 있어도 잉크가 마르지 않는 드라이 세이프(dry-safe) 기술을 개발해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기존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유연하게 적응하고, 변화하는 능력으로 스테들러는 시장에서의 지위를 놓치지 않아 왔다.

이같은 변화와 적응의 역사는 최근까지도 멈추지 않고 있다. 스테들러는 최근 홈페이지에 드로잉 연습 시트, 템플릿, 플래너 등을 올려놓고 고객들이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게 했다. 펜 사용을 멀리하는 요즘 시대의 소비자들로 하여금 직접 쓰고 그림으로써 흥미와 창의성을 유발시켜 자신의 시장을 지키고자 하는 적응력이다.

아울러 브랜드 명성을 바탕으로 만년필과 같은 프리미엄 제품도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고객맞춤형으로 여러 모델들을 내놓고 충성도 높은 고객들을 붙잡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혁신은 멈추지 않을 때 의미가 있다"

스테들러는 지금까지 끊임없는 혁신으로 세계인이 아끼는 필기구로 사랑받아 왔으나 모바일 시대를 더 이상 거스르지 않고 공존하기 위해 지난 2011년부터는 내부 혁신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스테들러는 지난해를 혁신 원년으로 선포했다. 400년 역사의 오래된 기업이지만 외부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코자 함이었다. 50~70명 규모의 연구개발(R&D) 인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마케팅, 세일즈, 재무, 생산, 엔지니어링까지 1년에 3~4회씩 모여 혁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스테들러는 아이디어를 끌어 모으기 위해 조직 내에서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을 극단적으로 장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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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셀 마르크스 스테들러 매니징디렉터
악셀 마르크스 매니징디렉터는 "혁신은 구조화된 계획에서는 나오기 쉽지 않다. 작은 개선은 계획에서 나오지만 돌파구까지 찾아지진 않는다. 마음껏 떠들고 시끄럽게 구는 미친 사람들에게서 혁신의 아이디어가 나온다. 그리고 혁신은 멈추지 않을 때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회사의 대표적인 혁신 제품들은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 하던 순간이나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불만을 토로하던 때, 심지어 고객이나 소비자들과 대화를 하던 순간 등에서 나왔다.

즉 스테들러의 혁신은 자유로움에서 나온다. 스테들러는 대나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잘 부러지지 않는 색연필을 만들고 있다. 아이디어가 처음 나온 것은 직원들끼리 점심을 먹는 자리였다. 잡담 중 우연히 나온 이야기가 색연필의 역사를 바꾼 혁신으로 이어졌다. 혁신은 계획이 아니라 자유로운 생각과 소통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게 스테들러의 철학이다.

마르크스 매니징디렉터는 "인류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쓸 것'이 필요했고, 그래서 종이와 펜도 만들어졌다. 모든 창의력은 쓰면서 나온다. 모든 아이디어의 시작은 연필이다. 스테들러의 제품이 무조건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인 것만큼은 확신한다"고 말했다.